




언제나 몇 번이라도
언질도 없이 그 애가 돌아왔다.
사울은 자주 섬 밖에 나갔다. 얼굴 보기 어려운 날이 길었다. 회사일이나 외주, 온갖 업무 따위로 바빠 연락도 쉽게 닿기 어려운 날이 이어졌다. 그는 섬을 나갈 때마다 다녀올게, 하고 인사했지만 나는 손을 흔들면서도 가끔 생각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 너도 잘 모르잖아. 나는 계속 너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데도, 기약도 없이. 나는 병실 창가에 앉아 자주 바깥을 보았다. 파도 부서지는 것과 수평선 너머의 공기를 한참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너를 기다리던 해의 기억은 대체로 그렇다.
온단 연락이 없었는데 선착장에 배 하나가 닿아 있었다. 연결다리를 내리고 승객을 내려주는 게 방금 도착한 것 같았다. 나는 긴 경적 소리에 잠에서 깨어 그걸 봤다. 그리고 누가 온다는 말도 듣지 못했는데 당연히 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왔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등 뒤에서 뛰지 마!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아차 싶어 천천히 걷는 척만 했다. 다섯 걸음쯤 걷고 다시 발이 빨라진다. 오래 기다렸던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기분이었다. 내게는 시간이 부족했고 기다리는 사람은 한정적이었으므로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사랑인지 알 수 없었어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건물을 나서니 바람결에 소금기가 묻어왔다. 공기가 짭짜름하고 조금 달았다. 날이 좋아 습도가 낮고 화창했다. 이상적인 날이었다. 바닷가에 오래 서 있기에 좋은 날씨였다. 저 멀리 누군가 해변에 서 있길래 그쪽으로 내달렸다. 사울이 멀리서 눈이 마주치고 손을 흔들려다 잠시 멈칫했다. 뛰지 마. 똑같은 소리를 하길래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본 그 애는 키가 훌쩍 커 있고 조금 더 낯설어져 있었다. 생판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낯익지 못한 모습에도 너인 걸 알 수 있었다. 너는 내 오랜 기다림이므로 그럴 수 있었다.
달려가 휘청 넘어지듯 안긴다. 속도를 받아주면서도 그 애는 뒤로 밀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서 안아준 채 나를 번쩍 들어올려 몇 바퀴 빙글 돌렸다. 바닷바람에 옷자락이 너울졌다. 파도 부서지는 것과 모양이 꼭 닮은 것도 같았다. 숨을 몰아쉬며 눈을 맞추자 그 애가 언제나처럼 눈매를 휘어 웃었다. 눈동자는 여름 같은 녹색이었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나는 그때 그것이 그저 오랜만에 뛰어서, 라고 생각했다. 심장이 원래 좋지 않았으므로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아픈 걸 두근거림으로 착각하기 좋았다.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채 다녀왔어, 하고 인사해 주었다. 나는 순간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아직 살아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별일 없었어?
응. 보고 싶었어.
대답하자 그가 얼굴에 손을 올려 뺨에 붙은 드레싱밴드 언저리를 조금 만져보다 말았다. 낯설어하는가 싶어 별것 아냐, 이것도. 대충 대답하고 만다. 내게는 더 중요한 게 많았으므로 실제로 별것 아니기도 했다. 그간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사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필름 카메라였다. 은색 바디에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가 있는 깔끔한 디자인. 나는 그걸 받아들고 한참 내려다보다 물었다. 웬 카메라? 그러자 사울이 싱그럽게 웃으며 답했다. 선물. 간결한 답변이었다.
디지털도 미러리스도 아니고…….
하지만 좋잖아?
낭만 같은 걸 계산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희한했다. 신기하기도 했다. 어디서 나서 어떻게 가져왔어, 같은 걸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그는 어쩐지 능숙하게 필름을 끼우고 감았다. 빛만 안 들어가면 돼, 하고 말하는 그는 해를 등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림자 안에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늘했다. 덥지 않아? 묻길래 괜찮아, 하고 답한다. 나는 그것이 그가 지닌 애정의 형태라는 것을 안다. 비록 사랑이라는 것을 그 당시엔 몰랐을지라도, 다정의 이미지라는 것은 알았다.
이쪽 봐.
그가 카메라를 들고 렌즈를 우리 방향으로 들었다. 나란히 서자 빛이 들어와 눈이 부셨다. 파도 위에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윤슬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아름다워 잠깐 그 모습을 가만히 넋놓고 보고 있자니 찰칵, 소리가 들렸다.
나 렌즈 안 보고 있었는데…….
괜찮아.
이것도 나름 다 추억이랬어. 그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춘 채 그가 한참 조용하다 물었다. 보고 싶었어? 나는 한 번 대답했는데도 다시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 응. 보고 싶었어. 아주 많이. 그러고 나면 사울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재차 품에 안아주었다. 사진은 흑백이라고 했다. 색감 없는 사진에는 그 애의 눈동자가 무슨 색인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바닷물의 색도 오늘의 날씨도 하나 담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게 못내 아쉽다가, 고개를 들자 다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단 한 번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 내가 어느 방향을 보고 어디를 향해 가든 그는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물밀듯이 감정처럼 그것을 눈치채고 만다. 부정할 수 없는 애정이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그 애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하고 만다. 너는 영원을 믿을까. 믿는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내게도 영원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