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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카메라를 보고서 순간을 박제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순간의 감정과 소리를 모조리 긁어낸 뒤에 순간의 아가리 안에 빛을 들이부은 다음 한참을 기다려 굳은 형태로 박제하는 도구라고. 장면만이 고정되어 그 속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며 그로 인하여 무언가를 전달받거나 사진은 언어적 수단이라는 감상을 받는 사람들은 그 대부분의 감상을 사진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감상, 해석, 기억과 과거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 혹은 교육으로 인해 발달된 도덕 관념으로부터 모든 것이 기인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카메라 렌즈 앞에 서지 않는다거나 남의 사진을 폄하하고 사진을 소장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확신할 수 없는 데에는 바로 단 한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세상에는 온갖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둥의 음모론자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 하나 없으리라는 확신은 너무도 오만한 탓이다.

 

아무튼간에 알렉산드라 이고레브나 테레시코바 또한 위에 기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에 크나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에 속하였는데, 그는 언제나 박제된 과거보다는 기록된 역사를 기반으로 나아가는 현재와 그로 인하여 번영할 미래에 더욱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그리고 당장에 주어진 것들이다. 주어질 것들은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으므로 그는 그것을 가졌다거나 주어졌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당장에 그가 가진 것은 테레시코프라는 이름과 신지구에서 새롭게 이어나갈 미래,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따로할 수 없게 된 연인이자 동반자 블란카 볼로소자르 레베데바가 고작이다. 고작이라고 이르기에는 과분한 감이 없잖아 있으나 아무튼 그러하다.

 

신지구에 도달한 사람들은 여전히 신지구에 발 디디고 있다는 사실을 생경해하며 만물에 감탄한다. 작은 통신기기를 꺼내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해 언제고 푸르른 하늘과 기름진 땅, 맑은 물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 고릿적의 폐지구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적고, 새로운 것에 들뜬 사람은 너무도 많다. 행성이 모조리 그들의 휴양지다. 작은 렌즈들은 도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모든 자연물과 인공물을 관음한다. 알렉산드라는 그것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굴면서도 종종 렌즈의 시선에 블란카의 낯이 걸리지 않게끔 블란카의 어깨를 쥐고 자연스럽게 끌어당겼다.

 

처음 몇 번 즈음은 블란카도 다소 당혹스러운 낯으로,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알렉산드라를 올려다보았으나, 그것이 몇 번 더 반복되었을 즈음에는 블란카 또한 눈치껏 깨달아 본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열광하기 마련이기도 하거니와 구태여 주변의 풍경을 찍는 사람을 잡아다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쩌면 두 사람 중 하나는 카메라나 사진이 지긋지긋하다고, 어느 순간에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는 테레시코프의 가족 사진을 찍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사진사가 직접 방문했고, 사진사는 거절하기도 전에 계약서에 찍힌 금액을 확인하고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 뒤로 일은 차근히 진행됐다. 가족들의 사진이 가장 먼저 찍혔다. 커다랗고 새카만 소니, 그러니까 아직도 망하지 않은 유서 깊은 일제 카메라를 들고 온 사진사는 제 직원 몇몇을 시켜 흰 배경천을 준비하고 그리 무례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며 현장을 총괄했다.

 

첫 번째는 테레시코프를 이름 뒤에 달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사진이었다. 금발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블란카는 사진자의 뒤편에서 알렉산드라를 보았다. 제 동반자와 닮은 사람들이 닮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을 박제하는 주체는 카메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사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플래시를 터트렸다. 셔터음은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블란카는 그것이 조금 우스워 작게 웃었다. 테레시코프들 중 하나가 그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궁금한데.”

 

그 물음은 트집을 잡는다거나 시비를 건다거나 하는 불쾌한 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제 연인이 이 상황에서 무엇에 웃었을까 궁금해하는 투여서 블란카는 조금 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모두 닮았는데 표정마저도 닮아 있어서요.”

“칭찬인가?”

“어쩌면요.”

 

다음엔 앞머리를 내 봐야겠어. 회춘하겠군요, 누이. 테레시코프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모두 알렉산드라를 흉내내어 틀린 그림 찾기를 해 보자는 가장 나이 든 테레시코프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블란카는 그 웃음에 휘말려 차마 답할 수 없었지만 내심 생각했다. 그들이 알렉산드라의 차림과 흉터, 눈빛과 머리 모양새, 옷차림과 말투를 따라 한다고 하더라도 블란카 레베데바는 기어코 자신의 동반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바꿀 수 없는 눈동자의 색, 시선에 담긴 감정과 언젠가 유실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품에 안고 있는 과거의 기억이 완전히 퇴색되지 않는 한, 그는 그의 사샤를 찾아낼 수 있었다.

 

테레시코프의 촬영이 끝날 즈음 그들은 그들 각자의 배우자를 불러들였다. 이름 뒤에 테레시코프가 붙지 않은 그들 각자의 동반자들이 함께 서자 사진사는 카메라의 줌을 조절해 프레임의 너비를 키웠다. 블란카는 어색하게 알렉산드라의 옆에 섰다. 막내라는 이유로 뒤로 밀린 알렉산드라는 선 자리에는 개의치 않는지 차라리 앉은 사람들의 뒤에 서는 게 블란카의 얼굴이 잘 보일 거라는 농담을 건넸다. 블란카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색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이건 가족 사진이었다. 가족이라니, 여기서 발음하기에는 낯선 단어를 머릿속에서 몇 번 굴리고 있으면 빛이 터졌다.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볼 때에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으나 마치 별이 터지는 듯한 강렬한 플래시였다. 몇 번은 눈을 감은 듯도 해서 결과물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명이 카메라 근처에 와글와글 모여 있을 때 블란카는 작게 하품을 하는 알렉산드라의 곁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남은 시간에는 패밀리의 누구든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웬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들기도 했고, 얼마 전에 결혼했던 신혼 부부도 들어왔다. 사람들은 근처를 오가며 구경하고 저도 찍겠다 손을 들었다. 테레시코프에 적을 둔 모두가 찍을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은 찍을 수 있었다. 저택에서 하루 종일 셔터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저택은 평소와 달리 시끌벅적했는데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누군가 모두가 사진 촬영을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해 준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누군가 답했다. 가족끼리는 서로 나누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그 말을 알렉산드라가 번역하여 블란카의 귀에 속삭였다. 사진만큼 유대와 소속감을 견고히 하는 물질이 또 없지, 이건 감성까지 챙길 수 있거든.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할까요? 하지만 사실인걸. 알렉산드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는 촬영장에 오래 서 있었다. 그들을 몹시 아끼고, 또 대견해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얼마 전이었다. 베를린에서 샤를로텐부르크 성을 모방한 건축물을 구경하던 두 사람이 웬 골목 구석으로 들어서게 된 것은 썩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알렉산드라나 블란카나 몇 가지 볼 것이나 먹을 것을 골라 놓은 뒤에는 어디든 발이 닿는 대로 걷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고, 알렉산드라는 관광지란 자고로 구석진 자리에서 만나는 보석 같은 인연이야말로 묘미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는 했다. 블란카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으나 이런 때에는 차마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저런 카메라를 본 적 있나?”

“영화에선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통 유리창 너머에서 사진사가 보였다. 사진이 찍히는 사람들은 가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몹시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 사진사는 와인딩 레버를 돌린 뒤에 다시 셔터를 누르고, 그 작업을 몇 번 즈음 반복했다. 늙은 카메라와 달리 그것을 든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조금 시선을 돌리면 흑백 사진들이 목재 벽 위에 압정으로 무심히 꽂혀 있었다. 필름도 요즘의 것인지 아닌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요즘의 것이라면 분명 아날로그 마니아들이나 쓸 법한 필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알렉산드라는 블란카를 보고 씩 웃었다.

 

“우리만의 사진도 필요하지 않겠어?”

“사샤 당신 취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요?”

“좋으면서!”

 

블란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싫은 것도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알렉산드라와 함께라면 그리 나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알렉산드라가 문을 열면 문에 매달려 있던 작은 금빛 종이 짤랑거렸다. 안쪽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늙은 노부부는 꼭 그런 카메라에 담겨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돈을 내어주고 있었다. 사진사는 노부부에게서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아 든 뒤에야 알렉산드라와 블란카를 환영했다.

 

“요즘 젊은 분들은 이런 흑백 사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던데 신기하군요.”
“젊어 보인다니 영광이군.”

“방금 나가신 분들은 여든이 넘으셨고, 보통 그런 분들이 오거든요.”
“그분들도 흑백 필름 세대는 아니지 않은가요?”

“하하, 요즈음은 팝한 것이 대세죠. 이 정도 빈티지는 솔직히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것들이니까요. 저희 할아버지는 사이버펑크도 빈티지가 됐다는 걸 들으면 깜짝 놀라신다니까요. 구경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온 게 맞죠?”

“네, 맞아요.”

 

사진사는 구석으로 가 카메라 뒤편을 열어 필름을 고른다. 브랜드도, 쓰인 언어도 다른 필름들 중 하나를 카메라 안에 집어넣고서 구석의 나무 스툴을 두 개를 끌고 와 조금은 촌스러운 배경천 앞에 둔다. 설마 여기에 앉으라고? 덩치 큰 손님이 코트를 벗으며 코웃음을 쳤다. 다섯은 앉고, 다섯은 둘 모두 서고, 다섯은 둘 중 하나만 앉힐 거예요. 블란카도 따라 코트를 벗다가 조금 당황한 낯으로 물었다.

 

“열다섯 장이나 찍을 생각은 없었는데요.”

“오, 못 봤어요? 문 앞에 적혀 있었을 텐데. 우리 집은 필름 한 통을 모조리 손님을 위해 쓴다구요.”

“보통 한 롤에 서른 컷은 나오지 않나?”

“아주 특별한 필름이죠!”

 

완전한 한 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블란카는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낯이었다. 사진사는 곧장 두 사람의 코트를 받아들고 구석의 싸구려 소가죽 소파 위에 대충 올려 두고서 커다란 구식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 앉아요. 웃고, 더 밝게! 가까이! 아, 좋아요! 대략 열 마디 정도를 뱉고서 셔터를 눌렀고, 레버를 돌렸고 다시 열 마디를 했다. 전자식에 비하면 너무 느린 속도였다. 그는 모든 컷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았다. 챠르륵, 하는 소리가 나는 셔터 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 모두 서 있는 채로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사가 스툴을 치우는 사이에 알렉산드라는 웃음기를 담아 블란카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했다.

 

“재미있지 않아?”

“좋은 추억을 될 것 같아요.”

 

*찰칵!*

 

블란카가 고개를 돌린다. 사진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비밀스러운 스캔들을 찍은 기자처럼 뿌듯한 웃음에 가까웠는데, 그 표정이 조금 웃기게 보여 블란카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리가 찍을 수 있는 게 네 컷으로 줄었어요.”

“이런, 규정 위반 아닌가?”

“이런 자연스러운 사진이야말로 나중에 손님들이 가장 아끼는 사진이 되거든요. 절 믿어 보세요!”

 

블란카는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드라는 푼돈을 지불하는 일에 무언가 더 말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다시금 셔터 소리가 네 번 더 울리고 레버가 네 번 더 돌아갔다. 사진사는 가볍지만 유쾌하게 말할 줄 알았다. 노부부의 촬영 시간에 웃음 소리가 들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테레시코프 저택으로 직접 찾아온 사진사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성의에 가까운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사는 순간을 박제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순간을 끌어안은 채로 멈춘 사람처럼 보였다. 블란카는 그래서 자신 또한 순간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메모지에 인화된 사진을 받을 주소를 써내릴 때, 알렉산드라는 국제우편임을 감안하여 그에게 팁을 더 지불했다.

 

문을 열어젖히며 블란카가 물었다.

 

“순간을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나요?”

“그러고 있으면 현재를 돌볼 수 없을 텐데. 왜 그런 걸 묻지?”

“사진이란 건 끌어안고 싶은 순간을 언제든 끌어안을 수 있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알렉산드라는 겉옷을 바르게 정돈하며 한참 생각했다. 골목을 벗어나기 전에야 그는 블란카를 보며 대답했다.

 

“난 지금도 언제나 끌어안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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