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과 닮은 외모는 그의 가장 큰 상속재산이었다.
십수 년도 전, 위대한 배우 마르셀 살라딘은 영면하며 그의 유일한 아들에게 수많은 재산을 남겼다. 선셋 대로의 커다란 저택, 지중해 시골 어귀 땅 몇 헥타르, 주인 없이 먼지 쌓여가던 보석들, 자동차,실크와 채 이름 외우기도 힘든 원단으로 만든 옷가지들과 출생증명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미들네임까지⋯.
그러나 이것들은 상속자, 로저 마르셀 살라딘의 재산 반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가 진정 물려받은 것은 부친과 닮은 생김새로, 마르셀이 남겼던 영예, 스타를 향한 사랑과 시대의 이름까지 기어이 그의차지가 되었다. 묵은 전통을 피해 달아난 청교도의 후손이라도 섬찟하게 만드는 이방의 이름은 그 옛날 그리스도의 무덤을 되찾으러 왔을 때처럼 무도하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선이 뚜렷한 이목구비와 깊은 아이홀, 고집스러운 입매, 유독 짙은 얼굴의 체모는 스크린에서만큼은 이 나라의 주류를 차지한 앵글로·색슨을 밀어내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스타가 낳은 스타. 그 스스로도 마르셀 살라딘의 유산이나 다름없었기에 마침내 이 저택에서 이전 주인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은 새 주인이 어느 문명의 미라라도 된 양 들어가 누워 있는 관밖에 없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육각관은 마르셀이 묻힌 석관보다는 빠르게 품은 이를 땅으로 돌려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종종 이런 기행을 저질렀다. 이전 벌인 몇 번의 소란에 비하면 기이한 축에도 들지 못했으므로 저택의 사람들은 별다른 말을 돌리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는 이 관에 못을 박아 저 밑으로 끌어내려줄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을 이뤄낸 것도 부친이니, 거둬지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이길 희구했다.
따라서 그는 선셋 대로 10901번지에 잘못 찾아온 청년 또한 그의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유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또, 만약 그렇다면 이는 그분이 남겨주신 것들 중 최악이라고.
그 청년은 어렸고 그만큼 무모했다. 보스턴, 매사추세츠에서 나고 자라 성공하겠다는 야망 하나만으로 가진 것 하나 없이 북미 대륙을 가로질렀다. 서쪽으로, 개척자여, 애팔래치아와 로키산맥의 험난함을 넘어, 태양마저 황금처럼 빛나는 곳으로! 마침내 산타모니카 산맥의 할리우드 사인 아래에 도달한 리오넬 스탠튼은 바로 그 태양 아래 선 채 생각했다. 로스앤젤레스, 천사들의 도시. 이곳은 명백한 운명의 종착지이며 이곳에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작열하는 햇볕을 온몸으로 느꼈고, 그 순간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라는 고루한 어구처럼, 동부의 촌뜨기에게 천사들의 도시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리오넬은 며칠 간 슬라이스 치즈를 끼운 식빵을 샌드위치라 부르며 연명했고 마침내 겨우겨우 구하게 된 일자리는 영화 스튜디오 조명 팀의 말단이었다. 무겁고 큰 조명 기구들을 옮기며 깐깐한 감독들의 호통을 들어야 했고,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그들의 불평에 신경써야 했다. 스크린 속의 그들은 대부분 예민했으며 허영에 가득 차 있었다. 리오넬이 비춘 스포트라이트에 반짝이는 건 사람보다는 그들이 착용한 보석 목걸이와 스팽글 드레스였다. 환한 세트장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따금 슬라이스 치즈를 끼운 식빵을 씹던 때를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입 안에는 텁텁함과 묘한 씁쓸함이 감돌았다.
보다시피 이 일은 리오넬에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그가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만큼 영화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은 리오넬이 그들만큼 열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놀라워했고, 리오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자네에게 이건 큰 행운이야, 할리우드에서 일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고! 리오넬은 생각했다. 모두 황금의 풍문에 눈이 먼 바보들이라고. 사실 할리우드는 지극히 평범하다고, 할리우드를 빛나게 만드는 건 사람들의 관심 그 자체라고.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육신에서–좀 더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배설의 순간이 더해진다–
태어난다. 예언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맥더프 또한 그러한데 대체 누가 이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만, 한 극의 인물은 육신이 아니라 어떤 대사나 묘사를 통해 태어난다. 우리 모두가 각자를 주인공으로 가진 극의 인물이라는 원칙에 따라, 또한 일생을 그렇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이에 대한 경의를 담아 근원을 되짚어보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가장 위대한 비극의 대사다.
로저 마르셀 살라딘은 바로 그 대사에서 태어났다. 굳이 예술에 대한 찬미나 육체와 영혼의 이원성을다룬 철학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랬다. 그 대사로 인해 마르셀 살라딘은 바다 건너 구대륙에 당도한영화감독의 눈에 들었으며, 그날 저녁 그에게 대접받은 샴페인에 기분 좋게 취해 저지른 다소 성급한 입맞춤이 없었다면 그의 영혼 일부를 떼어 세상에 내어놓을 일 또한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동이 로저를 세상에 내놓았다 해서 흔히 짐작하곤 하듯 그가 불행한 유년을 보낸 것은 아니다. 로저는 미국과 프랑스–그들의 이름에서 짐작하듯 나고 자란 곳은 이곳이다–, 체코, 수없이 많은 나라를 오가며 성장했다. 소년의 언어는 갑자기 툭 떨어지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구석에서 매끄럽게 음절을 이어가기도 하는데, 이는 이런 발자취의 기록이다. 비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나 배우가 글을 쓰는 법 따위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그들은 타인이 새겨준 문장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때로는 읽는 법 따위도 필요 없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고, 소년은 아주 짧은 대사없이 눈썹을 찌푸리는 작은 균열 하나로 사람 마음을 비집어 놓는 법 따위를 배웠다. ‘타고났군!’ 그런 감탄이 조명보다 밝게 세트를 채웠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그리고 지금. 리오넬 스탠튼은 선셋 대로 10901번지의 대저택 안에서 호두나무 관 안에 누운 과거의 대배우 로저 마르셀 살라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상속된 것들의 군집은 무덤처럼 보였고, 그 속에서 잊혀져 가는 스타가 죽음을 끌어안을 준비를 한다는 것은 꽤나 어울려 보였으나, 관 속의 남자는 분명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호명했다.
“이보세요, 살라딘 씨.”
남자는 마뜩잖다는 낯으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리오넬 스탠튼이 로저 살라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극성 팬입니까?”
“차가 고장 났는데, 차고가 열려 있어서…”
로저는 리오넬이 문장을 끝맺을 틈도 주지 않고 잘라 말했다. “더 묻지 말아요. 모든 물건에는 쓸모가있고, 이것도 그 주인이 있습니다.”
로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리오넬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괴짜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았어요.”
내밀어진 손 따윈 없는 듯 무심한 시선이 스쳐 지나가고, 이어 단절된 질문이 따라온다.
“어떤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죠?”
그 말에는 당연히 그 자신, ‘로저 마르셀 살라딘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라는 함의가 있다.
리오넬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벨기에인 탐정으로 분한 추리영화의 이름을 둘러댔다. 부디 이 재수 없는 부르주아지의 취향에 맞았기를 바라며 턱끝을 고집스럽게 치켜들었다.
“이름은?” 로저는 그제야 손을 맞잡고 시선을 맞췄다.
이제서야 그런 태도에 감명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리오넬은 순간 이만한 색채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필름이라는 것은 현실의 반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조소했다.
로저는 리오넬의 얼굴을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아주 낡고 익숙한 것의 자취를 찾는 듯 기민하고 자세하게.
“당신은 어딘가 익숙합니다. 아주 낯설어서 도리어 익숙해요.”
리오넬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죠.”
로저 정도로 부유하다면 이토록 경계심이 없기라도 한 것일까? 방금까지 그의 오만한 태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것들은 반의어가 아니라 감히 답하겠다. 그가 쓸 침실, 고장 난 차를 보관할 수 있는 차고 따위를 안내하는 로저에게 이렇게 대꾸한 것도 일종의 충동이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다뤄요. 아마 그때일 겁니다.”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리 답한 것은 어째서일까. 확실한 건 이 말이야말로 로저의 진정한 관심을 끌어냈고, 리오넬은 어느새 클럽에서 마음에 드는 아가씨에게 끈질기게 말을 붙이고자 하는 풋내기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며칠 새 리오넬은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도 별다른 부끄럼 없이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곳에서만 지내면 답답하진 않아요?” 그러나 로저는 명백히 영화계 이야기를 할 때 몇 배는 반응이 좋았다.
“나랑 같이 현장에도 가고 오랜 만에 새로 영화도 찍으면 좋잖아요. 다들 당신을 기다릴 텐데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싫음 말고.”
특유의 파헤치는 듯한 눈초리가 가늘어진다.
“영악한 것.”
그러나 리오넬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후로 몇 번인가 잠 못 드는 밤 마주쳐 함께 차를 마시거나 드라이브를 나가는 등의 요행이 모두 이 대화 탓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뜻밖의 일이라고 한다면, 막연하게 그를 부르주아지라 욕하곤 했던 것이 통찰이 되기라도 했던 걸까.
로저가 리오넬의 상상만큼 기품 있는 부분만 간직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허영심 많은 졸부가 조화 없이 욱여넣은 화려함으로 꾸민 만찬처럼, 로저는 청년에게 곧잘 과시하고 싶어 했다. 리오넬에게는 아마도 적선처럼 보였을 다소 성급한 선물들과 비슷했다. 허나 눈앞에서 금방 치워버릴 수 있는 선물꾸러미와는 달리 집안 한구석에 추한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것은 도저히 참지 못했으므로, 그의 과시는 석찬 후의 응접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저택에서 저 스스로를 스크린에 비추지 않는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그렇기에 주연은 온통 로저 마르셀 살라딘인 영화를 틀어두고 청년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스크린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리오넬을 본다. 로저는 이런 광경을 아주 오랜만에 보았고 거기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필름을 수없이 되돌리고 싶어질 만큼.
여주인공은 흰 글씨로 말한다. 당신은 나를 황폐하게 만들었어요. 로저는 그녀를 끌어안는다. 잠깐의 실랑이 후 여자는 로저의 목에 팔을 두르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춘다. 무릎 위로 놓인 머리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던 리오넬은 문득 일종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 같은 강렬한 이끌림을 느꼈다. 검은 화면 위로 흰 글씨가 수 놓이는 순간, 리오넬은 대사를 뱉는다. 무성영화를 음성으로 발화한다. 당신은 나를 황폐하게 만들었어요. 아주 잠깐의 깜박임.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입술이 맞붙는다. 리오넬의 손에 감기는 살결은 잘 무두질되어 생기를 잃은 가죽처럼 매끄럽고, 동시에 무르다. 스크린 속의 로저 마르셀 살라딘. 그 형상과 겹치는 찰나 수치스러운 세월이 깃든 육신을 물린다.
“어때요, 영화 잘 봤죠?”
아마 로저는 사랑한다고, 그렇게 대사를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고작 그런 대사로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상영관을 가득 채웠던 비웃음 섞인 소란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별다른 선택지는 없다. 반짝임을 간직했던 눈동자는 다시금 고요하다.
“나는 오직 영화에 나온 문장만 뱉을 수 있고, 필름 속의 행위만 재현할 수 있습니다.” 리오넬의
귓불을 문지르며 뱉어지는 라인.
“하지만 지금 당신은 영화 속이 아니라 내 곁에 있잖아요.”
풋내 나는 청년의 투정이 이어지면 로저가 다시금 뱉을 수 있는 대답도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저는 식상한 정의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매일 밤 로저가 주연을 맡은 영화를 보았다. 스크린 속의 로저는 무수히 다른 상대와 매일 입맞춤을 나누었고, 리오넬은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흰 글씨로 쓰인 대사를 똑같이 읊고 제게 기대어 살아 숨쉬는 현재의 로저와 입을 맞추었다. 리오넬은 사랑을 모방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했고, 영화 속 대사를 통해서만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모호함이 싫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스크린 속에서 단조로운 흑백의 평면으로 움직이는 무성영화 시대의 명배우가 아니었다.
“난 영화 속의 당신보다 내 곁의 당신이 좋아요.”
불쑥 뱉은 말에 로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리오넬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입니까?”
“당신의 영화가 싫은 건 아니에요. 그저 당신과 입 맞추는 사람이 영화 속 배우가 아니라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라고요.”
로저는 여전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그는 대신 투정을 부리듯 리오넬의 팔에 매달렸다.
“내일은 출근하지 말아요, 리오넬. 나와 같이 있어요.”
리오넬은 화제를 돌리려는 그 시도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애써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의 유혹이 달콤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로저. 곤란하다는 걸 알잖아요.”
“정말 나를 두고 가는 게 곤란합니까? 정말로?”
“정말로. 당신도, 이 수영장 딸린 집도. 그거 알아요? 난 항상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게
꿈이었어요.”
로저는 리오넬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했다. 수영장이 있는 집 그 이상으로. 리오넬이 내키지 않아한다고 해도, 로저가 필사적으로 쥐여주는 값비싼 물건들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 갈 때 즈음
리오넬은 오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던 유명한 감독 아래에서 조명을 잡게 된다. 착실히 경력을 쌓아 올린 탓일수도, 그도 아니면 귀티가 나기 시작하는 차림새 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구 밑에서 기계를 잡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건 황금의 그것보다 못한 빛이 아닌가. 리오넬은 나기를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하는 쇠골조 아래보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수영장 딸린 집 주변을 거닐고 싶었다. 물론 그게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아니라지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기 애처롭고,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무덤 안에서 질식하길 택했던 로저는 주말 오찬에서 이 소식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기력을 되찾았다. 서투른 유럽식으로 달걀을 먹던 리오넬이 깜짝 놀라 접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로저는 활기를 찾았다. 마르셀 살라딘을 영화계로 이끈 은사이자 로저에게는 또 다른 가족과도 같은 이라며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그 열띤 발화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얼마나 그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드디어 나를 기다리는 대중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제야 리오넬은 로저의 품에 들린 대본을 보고 관 속에 누워있지 않는 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으나 연인을 위해 마냥 행복했다. 시선을 옮기면 보이는 제목–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따위 보다는 굳게 다물린 입매가 그리는 호선의 자취를 따라잡는 것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세트 안으로 들어서는 로저는 도취된 몽상가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여왕과 마주하기 전의 기사처럼 엄숙해 보이기도 했다. 지겨운 조명이 있는 자리로 올라가는 어린 연인을 뒤로하고 바텐 체어에 꼿꼿이 앉은 로저는 필름 안에 박제된 듯 낯설었다. 그러나 리오넬은 자신의 일을 알았다. 조명이 비추어지고, 곧이어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세트장 안으로 들어서며 겪었던 약간의 사고들 따위는 순식간에 잊어버릴 정도로. 단단히 굳은 관절이 부드럽게 풀려 세워진 채로, 단숨에 현장의 존재감을 끌어온다.
이후 감독이 도착하고 나서 이어진 사건은 따로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다. 실망할 새도 없이 무구하고 당황스러운 낯. 언제 모였냐는 듯 늑대를 본 양 떼처럼 흩어지는 사람의 파도. 그리고 애원하듯, 아니. 어떤 갑작스러운 선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결연한 환자의 시선 따위를.
“4번 조명! 위치로!”
그리고는 한바탕의 소동. 그날 기어이 로저는 낯선 이를 침실로 꼬여내어 호두나무 관의 한 모서리에 못을 박았고, 손톱 하나가 부러질 정도로 관뚜껑을 세게 긁어 뛰쳐나왔다. 눈물로 범벅이 된 채로 부정을 고하며 용서를 비는 연인에게 더 어떻게 했어야만 했을까? 리오넬은 이제껏 그 모든 패악을 견뎌냈지만 참을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는 법이다. 울부짖음. 목숨으로 사죄하겠다는 다짐이며,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는 손발을 바라보는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순간까지 극적인 연출을 바라는군.’ 스쳐 지나간 경멸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로저의 애원이 거세진다.
“알잖아요!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잖아요! 나는 돌아가고 싶었어요. 미치도록 그랬다고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대중들이⋯.”
“대중?”
“그래요! 맞아요. 난 갈 거예요. 여기서 떠나서⋯.”
“대중들이 어디에 있는데요?”
“수없이 많이! 어디에나. 어디에나 있어요⋯”
“그리고 아무데도 없지.”
애원이 뚝 끊긴다. 리오넬은 미련 없이 돌아서 제 침실로 향한다. 맹세코 그는 스크린 속의 로저를 원하지 않았다. 위대한 대사에서 태어난 ‘인물’이 아니라 세속적인 육신에서 태어난 ‘사람’을 원했다.
성난 손길로 짐을 챙기며 되뇐다. ‘아주 잠깐 미련을 떼게 만드는 것 뿐이다. 고쳐진 차를 타고 나가서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와야지.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허황된 낭만의 도시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고, 영화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테다.’ 옷가지를 대충 쑤셔 넣은 손가방을 들고 수영장을 지나친다.
–탕!
다시, 그의 유일한 상속재산은 지독한 열정이다.
차명된 삶은 기어이 그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
나는 그 엔딩 크레딧에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못내 애석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찍힌 필름에는 마르셀 살라딘의 은사가 함께 했다. 지독한 장난 같은 라인.
“돌아와서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이 나를 기다린 만큼 나도 여러분을 그리워했어요. 다시는 떠나지않을 거예요, 다시는! 이게 로저 마르셀 살라딘의 삶입니다. 다른 인생은 있을 수 없죠.”
누군가는 이 필름을 비난했다. 살인자의 변명 따위를 기록으로 남겨두다니! 다른 누군가는 그를
동정했다. 화를 내기도 했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동안 이 필름은 가장 인기 있는 가십이었다.
주인을 잃은 저택은 사유지라는 명목에도 불구 주마다 새로운 사진과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1면에서 2면, 나중에는 작은 사진조차 없이. 저택과 필름, 그곳에 살았던 이를 향한 관심은 서서히 흩어졌다.
그렇게 영화관에 걸린 포스터가 수없이 갈아치워지듯, 해가 지나, 시대가 저물어 갔다. 마침내 일말의 관심조차 남기지 않은 채, 유행이 지나갔다.
.
.
.
.